司丞公의 세째 증조부인 宰臣公(諱戭)系 일부 後孫(익산파)들이 族譜를 深이 歪曲(왜곡)하여 사승공의 長子로 大同譜에 둔갑 收錄(수록)하고 長子로 行世하고있다. 이에 족보왜곡현황의 實狀 기록으로 남기고 또한 바로 잡히길 기대한다. (그림1. 익산파 족보왜곡 요약보 참조)                 

① 宰臣公(諱戭)系 後孫(이하 익산파)이란?

  재신공 김인(金戭)은 태사공의 8세손으로 참의공의 세째 동생이고 상촌공의 숙부가 되시며 公의 증손자인 송제공 김수량(金遂良)은 사승공과 8촌간이며 長男 장령공 김인산(金仁山)과 次男 김인령(金仁鹷)을 두었다. 장령공의 5世孫에서 김이호/익산파와 김윤호/수원파로 분파된다.   45世 장령공 인산(仁山)-46世 영주(楹住)-47世 의정(義精)-48世 군석(君碩)- 49世 이호(以豪)들이 족보왜곡의 주역으로 등장한다(그림 1)

②1871년 辛未譜  

族譜를 發行함에 1871년 발간돤 高宗 辛未譜에 의하여 昭穆의 連系를 찾아 世譜를 刊行한다. 즉 족보 발행의 근거 기준이 신미보이다(그림 2).

③ 1939년 己卯譜 

  재신공파 송제공(김수량)의 長者 장령공 김인산이 상촌공파 판관공(김영년/사승공의 長兄)의 次子로 초기 이름인 증(蒸)으로 후손들과 入譜(입보)한다. 이때 47世孫 金光信(김광신)公이 새롭게 收錄되어 이후의 후손들의 世數가 1世씩 밀렸다 (그림 3, 4, 5).

④ 1957년 丁酉譜

익산파 후손들은 기묘보에서 문제되었던 世數차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평공을 족보에서 말소시키고 재신공파에 재수록한다.

  長男 장령공(諱仁山)의 아들 46世 楹住(영주)公을 45世 用柱(용주)公으로 하여 사승공의 장자로, 후손들은 世數를 고쳐 入譜(입보)시킨다. 이때 사승공의 長子사마공과 사마공파 후손들은 족보에서 사라진다.

  장평公의 부인인 완산이씨를 사승공의 후부인(繼配)으로 왜곡하고, 사승공과 9촌 조카며느리를 合祔(합부)하여 전북 익산 용안면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본부인인 淑夫人 咸陽朴氏는 文義 西面(세종시 노호리의 엤지명)에 묘소가 있다(그림 7, 8, 9, 10).

⑤ 1999년 己卯譜

익산파 후손들은 정유보에서 문제되었던 9촌조카며느리가 사승공의 후부인으로 수록된 것을 말소하여 원상회복하고 재신공파 장령공의 부인으로 재수록힌다. 또한 사마공파 후손들을 사마공의 장자로 원상회복 시키고, 익산파 후손들은 사마공의 次男系로 入譜(입보)한다.

  이 과정에서 자리가 없어진 45世 用柱(용주)公은 46世 楹住(영주)公으로 바꿔 재신공파에 재수록힌다. 사승공파에 (46世 光信-47世 義精-48世 亨碩- 49世 以豪)와 재신공파 (46世 楹住- 47世 義精-48世 君碩- 49世 潤豪)로 수록되어있는데 楹住(영주)와用柱(용주), 義精(의정)과 明精(명정), 君碩(군석)과亨碩(형석) 등은 各各 初名과 配 等을 考慮할때  同一人으로 推定되며 따라서 桑村公派 와 宰臣公波에 兩立되어 收錄되고 있다(그림 11,12,).

족보왜곡과 관련하여 재신공파의 입장문은 다음과 같다(그림 13)


⑦結論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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