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金氏 紹介

경순왕의 후에 중 대표적 성관(姓貫)인 경주김씨의 기원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한다. 김알지는 서기 5년 신라 석탈해왕(昔脫解王) 9년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금궤(金櫃)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姓)을 김(金)으로 하였다.

대보공의 7세손 미추(味鄒)가 석조분왕(昔助賁王)의 딸 광명부인(光明夫人)을 취하여 사위가 되었는데 석첨해왕(昔沾解王)이 후사(後嗣)가 없어 석첨해왕(昔沾解王)의 뒤를 이어 신라 13대 왕으로 오르면서부터 신라 왕성(王姓)이 되었다. 경주김씨는 신라 56 왕중에서 38 왕(재위기간 587년)을 배출하여 대표적인 성씨를 이룰 수 있었다.

경순왕(알지의 28세손)은 신라의 제56대 왕이자 마지막  임금으로 휘는 부(傅)이며, 시호는 경순(敬順)이다. 제38대  원성왕(알지의 19세손)이며, 제46대  문성왕(알지의 23세손)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찬  효종(孝宗)이며, 어머니는 계아태후(桂娥太后)로 제49대  헌강왕(알지의 22세손)의 딸이다. 따라서 헌강왕의 외손자가 된다.

경순왕이 고려와의 병합으로 왕위를 고려 왕건에게 양위를 결심한 것은 이미 사양(斜陽) 길에 접어든 신라의 국세를 바로 잡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당시 신라의 사정은 재기불능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했고 태자 일(鎰)의 주장을 따라 끝까지 싸웠다고 하여 나라가 보전되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수많은 백성들의 생명만을 희생했을 것이며 종족(宗族)은 멸망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경순왕의 선택은 현실적이며 현명한 일이라 생각된다.

경순왕이 고려에 손국(遜國) 후 태조 왕건은 그를 정승으로 임명하여 지위를  태자보다 위에 두고, 해마다 녹봉(祿俸) 1,000석을 주었으며, ‘관광순화위국공신상주국낙랑왕정승(觀光順化衛國功臣上柱國樂浪王政丞)’에 봉하고, 식읍(食邑) 8,000호(戶)를 내리고 신란궁(神鸞宮)을 지어 하사하고 자기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하가 시켰다. 신라국을 폐지하여 경주라 하고, 그 지역을 김부의 식읍(食邑)으로 하사했고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에 임명하였으나 이는 재정적인 고려일 뿐 실제로 경주 지역에 거주한 적은 없는 듯하다.

本貫의 由來(본관의 유래)[28]

 김씨의 근본은 시림(始林)에서 나오니 즉 진한의 옛적 영토였으며 신라의 옛서울이다. 신라의 시조이신 박혁거세께서 甲子(檀紀二千二百七十七年漢宣帝五鳳元年/서기 기원전 57)年 4월에 개국을 하시어 도읍을 정하시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 사로(斯盧) ․ 사라(斯羅)이라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여 國名(국명)을 동일시하였다.

석탈해왕이 임금이 되신지 9年 乙丑(西紀 六十五年)年 봄에 金氏의 始祖 大輔公 金閼智(김알지)께서 시림에서 탄생하실 때 닭이 울어서 기이한 일이라하여 시림을 계림(鷄林)으로 고치고 國號로 하였다가 뒤에 新羅(新은 德業이 日新 하다는 뜻이고 羅는 四方의 賢人을 網羅한다는 뜻)라 부르게 하여 박씨와 석씨와 김씨의 三姓이 서로 傳하여 王이되니

박씨가 10 王에 231年間을 석씨가 8 王에 173年間을 김씨가 38 王에 588年間을 合하여 형국(亨國)한 것이 992年째인 경순왕 8年 乙未(서기 935)年에 이르러 王이 나라를 고려에 물려 주시니 都邑이었던 계림을 낮추어져 경주부(慶州府)가 되었고 고려의 成宗이 東京이라 고쳤더니 忠烈王이 또 계림부(鷄林府)라 고쳤으며 本朝 太宗께서 다시 경주부(慶州府)라 고치니라(一名에 金城이라고도 하며 或은 월성(月城) 또는 별성(鱉城)이라고 함).

○ 慶州金氏의 根源 (경주 김씨의 근원)[41]

   한국 제1위의 성씨 인구를 가진 김씨의 본관은 문헌상 623본이나 나타나 있으나, 이 중 시조가 뚜렷한 것은 100본 미만이다. 이들 여러 김씨는 거의 모두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계와 신라의 알지(閼智)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계의 어느 한쪽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갈래로 대별된다.

  알지계는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600여 관향(貫鄕)으로 분종(分宗)되고 김씨대종사(金氏大宗史)에도 266본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 중 뚜렷이 현존하는 본관은 대략 50여 본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에서 헌강왕계(憲康王系)의 광산, 무열왕계(武烈王系)의 강릉, 신무왕계(神武王系)의 영동김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경순왕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慶州 金氏는 閼智系統(알지계통)의 金氏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血族으로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에게는 아들 9명이 있었는데, 敬順王의 세째 아들인 永芬公 鳴鐘(영분공 명종,  妣(비) : 竹房夫人 朴氏(죽방부인 박씨)) 과 네째 아들 大安君 殷說 (대안군 은열, 妣(비) :고려태조 王建(왕건)의 장녀 樂浪公主 王氏(낙랑공주 왕씨)) 을  一世祖(일세조) 로 系代(계대)하는 계통이 대표적이다.

  김해김씨계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대보공(大甫公) 알지계(閼智系) 가운데서도 그 대종을 이루는 경주김씨(慶州金氏)는 파계가 복잡하지만, 대충 4-5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파로는 영분공파(永芬公派), 은열공파(殷說公派), 태사공파(太師公派),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계림군파(鷄林君派)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넷째 은열(殷說)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던 듯하며, 경주김씨 계림군파, 태사공파, 판도판서공파 등 거의 모든 계파가 은열의 후손이다.

  또한 같은 김씨중에도 구안동(舊安東). 청풍(淸風). 금녕(金寧). 도강(道康). 전주. 양근(楊根:益和). 영광. 안산 등이 모두 은열의 후손인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밖의 경주김씨계로는 선산(善山). 의성. 언양(彦陽). 울산. 나주. 상산(商山). 수원. 안로(安老). 연안. 순천(順天). 고령.양근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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